사상체질의학을 창시한 한의학자 이제마
일생을 의학연구와 제자들의 교육으로 보냈다. 기질과 성격의 차이에 따라 인간을 4가지로 나누고 그에 적합한 치료 방법을 제시한 사상의학을 확립하였다. 사상체질의학(四象體質醫學)을 창시함으로써 우리나라 의사학상(醫史學上) 불후(不朽)의 자취를 남긴 조선말기의 한의학자 이제마(출생1838년 운명1900년)다.
이제마의 호는 동무(東武)이며, 전주이씨 안원대군(全州李氏 安原大君)의 19대 손으로 함경남도 함주군(지금의 함흥) 평서면에서 진사(進士) 이반오(李攀五)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생은 심오한 철학관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연구로 명저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을 통해 사상체질의학을 체계화함으로써 한의학의 새로운 장을 개척하였으며, 오늘의 한의학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우한 운명을 타고나 국운이 쇠퇴한 어려운 시대를 살았으나, 타고난 총명성으로 일찍이 경서(經書)를 통독하고, 어려서부터 무예(武藝)를 좋아했으며, 평소 특이한 지병으로 의학과 역학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경향각지를 주유(周遊)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배움에 힘썼다.
1875년(39세) 무과(武科)에 등용되어 1876년 무위장(武衛將)에 제수되었으며, 1880년(44세)부터 1893년까지 선생의 철학적 세계관이 담긴 『격치고 (格致藁)』3편을 저술했다. 1886년(50세) 진해현감(鎭海縣監)에 임명되었으며, 1894년(58세) 불후의 명작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을 저술했다.
1896년(60세) 최문환의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선유위원(宣諭委員)에 제수되고 이듬해 고원군수로 전임되었으나, 1898년 모든 관직에서 사퇴한 후 보원국(補元國)이라는 한의원을 개설하고, 축적된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1900년 일생을 마칠때까지 『동의수세보원』의 퇴고(推敲) 를 계속했다.
선생은 『동의수세보원』으로 천명된 사상체질의학(四象體質醫學)을 창시함으로써 한의학에 새 지평을 열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의학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인간을 자연에 순응하는 수동적 자세에서 능동적 자세로 전환시켜 놓았다.
사상체질의학을 간략히 요약하면, 사람의 체질을 오장육부의 대소와 성정(性情)의 차이에 따라 태양인(太陽人), 태음인(太陰人), 소양인(少陽人), 소음인(少陰人)의 4종류로 나누며, 같은 병이라도 병증보다는 환자의 체질에 따라 처방을 달리해야한다는 이론으로 임상학적(臨床學的)인 방법에 따라 질병의 예방과 치료 및 양생(養生)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밖에 저서로는『천유초(闡幽抄)』,『제중신편(濟衆新編)』등이 있다.
발췌:집현전특허사무소(http://www.bc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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