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빛낸 발명 위인 명장 이순신
李舜臣 1545(인조1)~1611(선조 31) 조선 선조때의 명장. 자는 여해, 병조참의 거의 증손, 정의 아들. 1579년 무과에 급제, 함경도의 동구비보 권관에 보직되고, 이듬해에 발포수군만호를 거쳐 1583년 건원보권관, 훈련원참군, 1585년 사복시주부, 조산보만호, 1589년 선전관, 정읍현감을 역임하는 등 미관말직만을 지내다가 1591년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승진, 좌수영에 부임하여 군비확충에 전력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초로 옥포에서 적 수군 선견부대 30여척을 격파, 이어 사천에서 거북선을 처음 사용하여 13척을 분쇄, 당포에서 20척, 당항포에서 100여척을 각각 격파하여 자헌대부에 승품되고, 7월 한산도에서 적선 70여 척을 무찔러 정헌대부에 올랐다.
다시 가토의 수군을 안골포에서 격파하고 9월 적군의 근거지인 부산에 쳐들어가 100여 척을 부수고, 1593년 다시 부산과 웅천의 적 수군을 궤멸, 남해안 일대의 적군을 완전히 소탕하고 한산도로 진을 옮겨 본영으로 삼고, 그후 최초의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다.
이듬해 명나라 수군이 내원하자 죽도에 진을 옮기고 이어 장문포에서 왜군을 격파, 적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서해안으로 진출하려는 적 수군의 전진을 막아 왜군의 작전에 큰 차질을 초래케 하였다.
전쟁이 소강상태에 들어가자 군사훈련, 군비확충, 피난민의 생업보장, 산업장려 등에 힘쓰다 1597년 원균의 모함으로 서울에 압송되어 사형을 받게 되었으나, 정탁의 변호로 권율의 막하에 백의종군했으나 정유재란으로 원균이 참패하자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 12척의 함선과 빈약한 병력을 거느리고 명량에서 133척의 적군과 대결, 31척을 부수는 대전과를 거두었다.
다음해 고금도로 진을 옮기고 철수하는 적선 500척이 노량에 집결하자 명나라 제독 진인의 수군과 연합, 적군을 기습하다 혼전 중 유탄에 맞아 전사했다.
충성심이 강하고 전략에 뛰어난 용장으로서 임진왜란 중 싸움마다 승리했으며, 적 수군의 기세를 꺾어 제해권을 장악했고, 곡창지대 전라도를 방어함으로써 군량미 확보에 만전을 기하는 등 위기에 처한 국가를 지탱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글에도 능하여 [난중일기]와 시조 등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1604년 선무공신 1등이 되고, 풍덕부원군에 추봉, 좌의정에 추증, 1613년 영의정이 더해졌다. 장지는 아산의 어라산, 왕이 친히 지은 비문과 충신문이 건립되었다. 충무의 충렬사, 아산의 현충사 등에 제향, 시호는 충무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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