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빵집 아들로 태어난 다이믈러의 오토바이 발명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이면 어느 곳이든 신속하게 달려갈 수 있는 오토바이. 막힘없이 달릴 수 있어 순찰, 배달, 출퇴근 등에 적격인 오토바이의 최초 발명가는 고트리트 다이믈러. 가난한 빵집 아들로 태어난 다이믈러는 제빵 기술을 배워 대를 이을 것을 강요하는 아버지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각종 기계에만 정신이 쏠려 있었다. 다이믈러의 고집 앞에는 그의 아버지도 손을 들고 말았다.
후일 자동차의 대부가 된 칼·벤츠가 어떻게 해서든지 자전거에 내연기관을 장치하려고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 무렵 다이믈러도 자동 2륜차(오토바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1885년의 봄, 벤츠는 자기 집 마당에서 4사이클 석유엔진을 단 자동 2륜의 시운전에 성공했다. 뒤질세라 그해 가을 다이믈러는 벤츠를 능가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100㎞나 떨어져 살았던 두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이였고, 또 한평생 얼굴을 마주칠 기회조차 없었다. 다이믈러가 오토바이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872년. 다이믈러는 니클라우스 오토라는 기계기술자를 만나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 그 무렵 오토가 4사이클 고정 내연 가스엔진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에 자극을 받은 다이믈러는 자신도 자동 2륜차 연구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는 오토의 엔진을 분석하여 이것보다 뛰어난 내연기관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달의 세월이 흘렀으나 달리 뾰족한 방안이 없었다. 끙끙 앓으며 또 다시 몇 달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정리하며 희망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다. 연료는 석탄가스 대신 석유의 증기를 쓰고, 점화는 영구불꽃 대신 공기식 점화장치를 쓰는 거다.’ 다이믈러의 생각은 적중했다. 오토의 특허를 교묘히 피하면서 성능은 오히려 앞선 내연기관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내연기관발명에 이어 2륜차 제작에 들어갔다. 그의 2륜차는 튼튼한 구조로서 바퀴는 나무로 만들었으며 내연기관은 탑승자의 좌석 바로 밑에 장치했다.
다이믈러는 이 자동 2륜차(오토바이)가 시골 우체부에게는 최고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우체국에서 거들떠보지도 않아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바로 이 오토바이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세계 제1차대전 전후. 무엇보다 값이 싸다는 것과 주행비용이 저렴하다는데서 자동차의 인기를 앞지르게 된 것이다.
전쟁이 계속되자 다이믈러의 오토바이는 헌병 및 연락병용으로 채택되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그 인기가 치솟아 오토바이 문화시대를 활짝 열어 놓았다.(글:왕연중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발췌:집현전특허사무소(http://www.bc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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